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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전 힘들었던 점을 다섯가지로 분류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난 후 저희 간증입니다.
끝까지 읽어보시고 공감이 되시는 부분과 궁금한 점이 있다면 글을 남겨주시거나
좌측에 연락처로 연락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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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전 힘들었던 점>
(1) 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남 앞에 쉽게 말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사랑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를 좋게 보이려고 내 속 마음은 감추고 상대에 기분에 맞춰서
말해야 하는 갈등
꼭해야 하는 말인데도 부끄러워 말을 하지 않고 속앓이를 하는 내 모습
교회에 가기 싫어도 안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가는 경우가 많았고 그것이
그저 가는 습관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어쩌다 교회에 가지 않는 날은 후회하며
하루 종일 그 생각에 잡혀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가족들이 눈치가 보여 갈등하며 사지 못할 때가 많다
(2) 부부
나의 잘못인 것을 알면서도 사과 할까 말까 망설이다 흐지부지 지나가 버리고 자존심
때문에 잘못했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오히려 큰소리치는 적반하장의 경우
할 말이 있어도 남편의 눈치를 보느라 말을 하지 않고 혼자 일을 저지르는 행동
부부관계도 서로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갈등
남편이 내말을 들어주지 않아 혼자 생각하고 답을 내는 갈등
부부로 살면서도 계속 같이 살아야 하나 하며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의 갈등
남들 앞에서는 사이좋은 부부로 보이고 싶은 생각에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하는 모습
자녀들의 양육문제로 서로의 입장만 내세우는 모습
부부의 삶이 중심이 아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사는 모습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 인해
부부싸움이 일어난다.
아내인 나보다는 부모의 말에 편드는 남편이 미워서 이사람 에게 나의 남은 인생을 맡겨도
되나하는 갈등
말을 하면 남편에게 무시 당할까봐 웬만하면 덮어버리고 후회하는 갈등
남편의 간섭과 잔소리가 싫어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갈등
나는 남편에게 해주지 않으면서 남편을 나에게 무엇이든지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3) 자녀
아이들이 학원에 보내달라고 하면 내 마음은 미안함에 안절부절 하는 모습
자녀들이 내 말대로 해야 잘하는 것 인양 착각
나는 하지 못하면서 자녀들에게는 완벽을 기대하는 모습
남편에게 기분 나쁜 것을 자녀들에게 화풀이 한다
자녀들에게는 약속을 잘 지키라고 하면서 나는 약속한 것을 잊어버린다.
자녀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도 내가 해 주어야 자녀들에게 좋은 엄마인줄 알았다
자녀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야단치면 내 마음이 들 때 까지 하게 하는 엄마
나는 자녀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잘하는 줄 알고 조금만 잘못해도 화를 내며 때리는 모습
자녀들 앞에서 남편을 무시하고 잘못을 지적하고 말도 함부로 하는 엄마
자녀들이 잘해도 칭찬은 인색하고 더 잘하기를 바랐고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엄마
남들 앞에서는 교양 있는 척 하며 자녀들에게 상냥하게 대하지만 집에 오면 무서운 엄마로 돌변한다.
(4) 시부모
시부모는 아무리 잘해도 역시 시부모라는 생각
말씀을 딸 같다고 하면서 나에게 하시는 행동은 며느리
부모같이 하려해도 열리지 않는 마음
마음은 싫은데 시 부모라는 권위에 눌려 행동하는 내 모습
시 부모의 생활과 친정부모를 비교하며 시부모님을 판단 정죄 한다
같은 공간에서 같이 사는 것이 싫어 따로 나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다.
시 부모님을 앉아서 해주는 것 받는 사람들 친정부모는 딸 가진 죄인
시부모에게 하는 것만큼 친정부모에게 했으면 효녀란 말 들었겠다며 시부모에게 잘하고 있다고 생각
요새 너같이 시부모 모시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말들 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살림하는 것 참견하고 살림살이 어머니 마음대로 해놓은 것이 짜증난다.
(5) 부모
왜나는 잘난 부모 못 만나고 가난한 부모 밑에서 배우지 못하고 일찍부터 사회생활하며
돈 벌어야 하나
남들처럼 예쁘지도 않고 잘나지도 못하게 낳았나?
능력 없으면 많이 낳지나 말지
왜 내가 동생들 학비 대야해 ?
가족 없이 혼자였음 좋겠어.
누구는 예뻐하고 누구는 미워하고 차별하는 것 같아
나한테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어
(6) 이웃(형제, 친구)
잘난 척 하는 사람들 보면 얄밉다
자격지심에 늘 주눅 들어 있다 (가방끈 짧은 것과 돈이 없는 것 때문에)
나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은 만나지 않는다.
같은 형제라도 서로 말이 겉돈다.
형제끼리 서로 연락하지 않고 사는 것이 편하다
내 집에 오는 형제(시누이)들이 불편하다
내가 잘못하면 지적당할까 사람들이 두렵다
시댁 식구에게는 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마음은 늘 살얼음판이다
친구들을 만나면 자신 있는 것은 잘난 척 하지만 부족한 것은 얕잡아 보일까봐 말을 하지 않는다.
나보다 잘난 것 같으면 비굴하게 나보다 못난 것 같으면 낮게 보며 너보다 잘 났다는 우월감
자존심 때문에 남들 앞에서는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 내 수치를 드러내기 싫다
(7) 물질
없는 것에 욕심내며 갖고 싶어 한다
없는 것에 만족함이 없고 부족한 것만 생각한다.
해결되지 않는 돈에 집착하며 걱정한다.
갖고 싶은 것에 공상은 끝이 없지만 공상이 끝나면 허망하다
돈이 없으니 남편을 잡는다. 남편도 어디서 나와야 가지고 올 텐데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다
돈을 달라는 아이들에게 짜증이 난다
무엇이든 돈에 중심이 맞춰져 있다
돈이 없으면 사람 구실도 못하는 걸로 알고 있다
돈이 없으니 아무데도 가기 싫다
내야할 돈은 많은데 들어오는 돈은 턱없이 부족하니 극단적인 생각을 한다.
내가 나가서 벌면 잘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질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사람들 눈치 보며 비굴해 진다
없는데도 있는 척 그러나 마음은 불안 그자체이다
돈이 없다고 가고 싶은데도 안가고 아낀다고 하지만 다른데도 새 버리니까 그 돈이
그 돈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달라진 나의 모습>
광명중앙 교회 이 미숙 직분자
20년이 넘도록 신앙생활을 했어도 신앙과 생활은 따로 떨어진 삶을 살았습니다.
좋은 성도되기 위하여 열심히 교회 일에 순종하고 예배드리고 성경공부 하며 지나온 날들,
그러나 실상 내가 하고 싶은 봉사, 그러면서 사람에 눌리고 물질에 눌려 남의 이목만 생각하고
시험도 자주 드는 그런 신앙생활 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계신 것 같은데 믿어지지 않는 하나님 이었습니다.
나와는 거리가 먼
하나님 나와는 상관이 없는 하나님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하나님 이었습니다.
기도는 하고 있지만 믿어지지 않으니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당신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저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대답 했습니다.
머리로만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하나님 이었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가긴 하지만 벌써 형식이 되어 버렸고 몸은 성전에 앉아 있지만
생각과 마음은 세상에(근심, 걱정, 물질, 자녀)등에 있었으며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도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하는 것이지 감사함으로 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 가는 것이 귀찮아지고 싫었지만 주일날 교회에 안가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함 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교회에 가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성경공부를 해도 그것이 내 지식으로만 쌓일 뿐 신앙과 생활에 적용 하며 살지를 못했습니다.
그 지식이 고정관념을 만들었고 나만의 틀 속에 하나님을 가두어 놓았습니다.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맞아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는 분이야” 말을 하지만
나의 속마음은 내가 지금 믿음으로 하는 소리인지 겉치레로 하는 말인지 늘 갈등 속에 있었고
그런 내 모습이 역겨울 때도 많았습니다. 기도를 해도 아이들이 부모에게 말도 안 되는 떼를 쓰듯이
하나님께 떼쓰기 일쑤였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으면 하나님을 협박 했습니다.
입으로는 쫑알쫑알 기도를 하고 있지만 성령님의 인도함 따라 한 적이 없었으며 그저 형식이었고
기도 속에 하나님은 내가 요구하는 것은 전부해 줘야하는 내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그런 분으로만 알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알고 잘 믿는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생활과는 거리가 먼 하나님, 교회에만 계신 하나님, 십자가의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이,
그냥 듣고 흘려 버리는, 교회 밖에서는 잊어버리는 그런 생활이었습니다. 직장에서,
사람 앞에서는 예수님을 부끄러워했고 전도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짐이 되었습니다.
집에서도 다를 것은 없었습니다.
내 신앙과 마음은 무너져 있었지만 겉으로 보기엔 신앙심 좋고 착한 며느리였으며
내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칭찬을 했고 복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자주 다툼이 있었고 부모님이 말씀하시면 참견으로 생각되어 싫었습니다.
따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있었고 원망과 불평 미움과 분노가 쌓여갔습니다.
요새 생긴 신조어 중에 ‘시 월드’라고 있다지요. 시댁의 삶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많은 여자들이 그렇듯 나도 결혼을 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시댁과의 갈등이 시작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남남으로 살다가 가족으로 살아가는데 왜 갈등이 없겠습니까?
저도 시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참 많은 갈등을 겪으며 살았습니다.
결혼을 하면 신앙 안에서 서로 이해하며 사랑하며 예수 안에서 행복한 생활을 할 줄 알았습니다.
적어도 처음 몇 달은 그랬지요.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인 나의 겉과 속이 다른 삶.
남들 앞에서는 우리가정처럼 행복한 집안이 없을 거라고 합니다.
우리 가정의 삶속에서 그들의 허물을 보는 나는 그것이 마음의 부담이었고 그러실수록 더 잘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생겨 싫어도 싫다는 표현을 하지 못했습니다.
싫어도 시부모니까 의무감에 억지로 하게 되는 것이 반복 되면서 시부모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에 시부모에 대한 미움을 키워가며 살아왔지요.
교회를 다니면서도 예수 하고는 너무나 먼 삶. 세상 사람들 보다 더 지독한 사람 주일날
목사님 설교 중 내 생활과 비슷한 말씀을 하시면 나는 속으로 저 말씀은 저 노인네들이 들어야 한다고
아마 마음에 찔릴 거라고 내가 아닌 저 사람들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부모공경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면 나도 내가 잘못한 것을 잘 알기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이제부터 부모에게 잘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집에 오지만 막상 그분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
다시 그들의 허물이 눈에 보여 지면서 잘해야겠다는 다짐은 사라져 버립니다.
내 지인들은 말합니다. 요새 너같이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냐고
시부모를 잘 모시니 하나님께 복 받을 것이라고 그러나 내 자신의 삶을 알기에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나도 시부모와 다를 게 없기 때문이지요.
또한 교회에 다니면서도 내 마음에 예수님의 사랑은 없고 상처로 사람을 미워하며 사람에게 향한
분노가 마음에 가득 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부정으로 가득 차 있는 내 생각은 상대의 생각을 헤집고 다닙니다. 내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 이지요.
내 생각은 온통 상대방의 생각으로 신경이 쓰입니다. 혼자 생각하고 답을 냅니다.
남이 잘 되는 것에 질투하고 남이 잘못되면 고소해 하는 못된 내 심보, 부끄러운 모습은 감추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니 힘들고 속마음은 화가 나고 싫은데 겉으로는 안 그런 척 위선 떨며
자존심을 내세우는 가식적인 내 모습. 내 생각이 옳다고 말하고 상대를 인정해 주지 않고
내 말만 들어 주기를 원하며 내 마음을 알아주기 원합니다. 사람들을 겉모습으로 만 판단하고
내 기준의 고정관념 틀 속에서 그들을 보았습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더불어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 늘 긴장하고 근심과 걱정이 앞섰고 마음속에 미움이 가득하게 되니
그것이 분노로 표출이 되고 상대를 저주하게 됩니다. 말씀에는 서로 사랑하라 눈에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라 그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지만 빈 마음뿐 이었고
사랑이 어떤 것인지 몰랐으며 기분 좋을 땐 사랑하고 기분 나쁘면 사랑은 간 곳이 없고 잘 해주는 것이
사랑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내 기준으로 하는 사랑, 사랑을 포기하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삶,
상대가 나를 미워하며 싫어 하는데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시는데 나에게 악담하며
저주하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미움과 분노로 가득 차 있는
내 마음에 용서란 단어는 생소 했습니다. 용서란 말은 성경에만 있을 뿐 정작 나에게는 없는 말이었습니다.
또한 무엇을 용서하고 용서 받아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뭐 필요할까?
그냥 덮고 살면 되는 것이지 그러나 덮어버린 그 마음은 나를 포기하게 되고
내 마음에 악을 쌓는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삶,
절망과 아픔과 쓰라린 고통 속에서 점점 죽어가는 나를 더 이상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내 생활이 지옥 이었습니다.
장님이 되어 갈길 몰라 헤매이는 내 모습,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이 인생인지
내 자신이 참으로 비참하고 불쌍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삶에 목적도 없이 믿음과 소망(꿈)과 사랑(서로사랑)을 다 소멸시킨 채 캄캄함 속에 나를 방치하고 있었습니다.
내 위치와 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한 채 마음은 교만으로 똘똘 뭉쳐있고
사람들의 소리에 휘둘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며 마음은 늘 우울하고
생각은 엉켜있는 실타래와 같이 복잡했습니다. 돌파구를 찾는다는 것이 세상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차라리 일을 하자 일에 열중 하다보면 또 하루가 잊혀 지겠지 하며 일을 찾게 되고 그것에 만족을 두려합니다.
일을 하면 할수록 공허해 지는 마음을 물질로 채우게 되고 있지도 않은 것에 욕심을 냅니다.
욕심을 내다보니 무리하게 되고 몸은 마음대로 따라 주지 않습니다. 결국 병든 몸으로 일도
그만두게 되고 물질로 채워진 내 마음은 있지도 않은 것에 계산하며 탐내며 갖고 싶어 합니다.
내 마음에 만족함은 없고 부족함은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다가오는 문제들 속에 해결할 방법 없이 마음은 한숨과 절망과 고통과 답답함으로 터져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이렇게 갈팡질팡 하며 힘들어 할 때 어느 집사님을 통해 광명 중앙 교회에 기도하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김용준 목사님의 인도로 진실하게 기도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말과 행동이 바뀌었나 봅니다.
어느 날 아버님이 그 교회가 어디 있냐며 가보고 싶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기회인지 그때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마 그때까지 마음속 깊이 시부모님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이렇게 사람과 갈등하며 미움으로 가득 차 있던 나에게 목사님께서 미운 사람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 하라고 하시는데 처음에는 축복하기가 너무도 싫었습니다.
축복 하느니 차라리 기도를 그만두는 것이 낫겠다 싶었습니다.
내가 왜 축복해야 하지? 목사님은 축복이 용서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축복이 용서가 될 수 있을까? 의아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참 기쁨과 행복 하고픈 마음이 간절했기에 목사님의 말씀에 따라 축복하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 싫어도 해야 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할 때는 의심과 갈등이 많았습니다. 내 마음에 정말 미움이 있는게 맞는 것인지
꼭 이렇게 기도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갈등 또 용서하기 싫은 마음도 있었지요.
축복하는 것도 대충대충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다잡고 주님이 내게 주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축복기도 하며 내 마음에 있는 미움과 분노를 쫓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부활의 생명을 받기위해 김용준 목사님이 만드신 5단계의 축복기도를 배우고 하루도
빠짐없이 실천했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토록 미웠던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나의 자존심과 습관 등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사랑 받는 기도를 시작한지 어언 7개월쯤 접어들었던
어느 가을날 기도를 하는 도중에 갑자기 내 가슴에 시부모님의형상이 쑥 하고 들어오더니
회개기도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분들의 아픈 마음과 힘든 마음 외로움과 슬픔이 그대로 내 마음에 느껴지면서
그 영혼이 너무 불쌍하고 안쓰럽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시부모님을 향한 미움과 원망
그들의 허물을 보고 말하며 판단하며 싫어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얼마나 큰 죄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상대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것과 사람을 향한 미움과 분노가
내 마음 깊숙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내가 정녕 죄인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내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지 않고 내 생각과 내 마음대로 살았던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상대를 용서하기에 앞서 내 자신이 먼저 주님께 용서를 받았습니다.
지난날의 나의 잘못을 눈물과 통곡으로 회개하게 하시며 진실함으로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미웠던 사람들이 그렇게 불쌍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여워 눈물이 났습니다.
사람을 용서하게 되니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집니다.
상대가 아무리 험악한 말을 해도 마음은 잔잔하며 평안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들어오니 전에는 보지 못했던 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살후2:10=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 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예수님은 먼데 계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내 삶속에 내 생활 속에 계심을 알게 되었고 또 말씀을 들으면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과 사람을 용서하며 사랑하는 것 성도의 본분은 사람을 축복하며 화목하며
사는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미움과 분노가 내 마음에서 사라지고 나를 사랑하기에 나를 용서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나에게 임하면서 내 마음은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차고 마음에 천국을 실제로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의 사랑이 내 마음에 온전히 채워졌음을 느꼈습니다.
눅6:27~28=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 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 말씀이 나의 삶에서 실제로 행하여지고 있습니다. 처음변화는 시부모님과의 변화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사랑을 받고 보니 전에는 그렇게 미웠던 그분들에게 긍휼한마음이 생겨 눈물이 났습니다.
시부모님이 불쌍해지고 내가 잘해 드리지 못한 회개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부모는(특히 시부모는) 귀찮은 존재,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지금은 부모님들의 은혜와 사랑을 알게 하셨고 살아계신 것이 감사합니다.
그분들이 계시기에 나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래도록
우리 곁에 계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임한지 2년8개월 지금도 그분들을 위해
눈물로 축복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상대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대로입니다. 내 자신의 변화입니다.
내 자신이 먼저 변해야 상대도 변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의 말에 울렁거림이 없습니다.
평안의 마음이 요동하지 않습니다. 잔잔하고 고요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이 내 마음을 이렇게 평안하게 해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사랑만이
나에게 평안함을 주실 뿐입니다. 내 자신이 이렇게 변화되어 있음에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두 번째는 남편과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전에 나는 시부모와의 갈등이 심해지다 보니 남편과의 거리도 멀어지게 되고
시부모님 말만 듣고 나에게만 야단치는 남편이 꼴도 보기 싫었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는 남편이 야속해서 나도 아예 말을 안 해버립니다.
남편이 말을 하면 끝까지 듣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중간에 말을 막아 내 생각을 말해야 했고
남편의 말을 인정해 주지 않고 그게 아니라고 부인하며 내 말을 들어 달라고 합니다.
남편의 생각과 마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늘 내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편과의 거리가 생기게 되고 자연히 대화는 줄어갔습니다.
서로 대화가 없다 보니 남편은 그저 돈만 벌어다 주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내 마음에서 남편을 점점 멀리하게 되면서 잠자리에 있어도 서로 등을 돌리고 자리에 드는 것이 일쑤였습니다.
또 몸 에 손대는 것이 싫으니 내 몸에 올라오는 남편의 손을 뿌리쳐 버립니다.
부부관계를 맺는 것도 싫어지면서 짜증이 났습니다.
나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혼자 결정하고 남의 생각까지 끌어들여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면
이런 말을 하겠지? 하며 혼자 답을 내곤 말을 하지 않게 되고 왜 살아야 하는지 다 그렇게 사는 것 인가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내 생각의 틀에 나를 가둬버리고 살았습니다.
마음은 갈등과 상처로 몸은 피로에 지쳐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음은 늘 불편했으며 같이 대화하는 것도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싫어서 서로 피하는 것이 일상화 되다 보니
집안 분위기는 늘 냉랭했습니다. 죽지 못해 사는 삶, 그 삶을 하루라도 피하기 위해 주일이면
하루 종일 교회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고 나니 남편에 대한 나의 행동이
부끄러움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나의 마음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내가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게 되고 남편이 무슨 말을 해도 끝까지 듣게 되고
그 말을 이해하고 수용 하며 인정하게 되며 내 생각을 말하기보다 남편의 말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남편이 만지면 싫었던 것도 사라지고 내가 먼저 가까이 가고 싶고 안아주고 싶으며
남편이 옆에 같이 있다는 것이 너무 너무 좋고 행복 합니다. 이제는 남편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사람인지 남편이 옆에 있는 것이 감사하고 남편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해해야지 생각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아이들과의 변화입니다.
아이들에겐 잔소리하는 엄마, 짜증내는 엄마, 무서운 엄마, 이런 내 모습에 아이들은 얼마나 질리고 싫었을까요? 남들 앞에선 교양 있는 척, 그러나 집에 오면 돌변하는 엄마,
시키는 것을 하지 않으면 혼내고 때리고 협박하고 윽박지르기를 반복하는 엄마,
다 할 때까지 잔소리를 하고 내 마음에 들 때까지 칭찬 한번 하지 않는 인색한 엄마였습니다.
오죽 하면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게 되면 먼저 서두가 엄마 내가 이 말 하면 화내지 말고 들어달라고 했을까요.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나름대로 잘 키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어릴 땐 힘이 없으니
부모가 말하는 대로 따라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마음속에 미움의 상처를 남겼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내 생각 내 기준에서 아이들에게 교육했고 학교생활 잘 하는 것이 착한 것인 줄 알았고
공부를 잘 하는 것이 최고 인줄 알았습니다. 아이들이 교회에 잘 다니기에 그런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교회에 잘 나가니까 다 잘 될 것 이라는 착각 속에서 나는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이제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 말합니다. 엄마 하고는 말이 안 통해,
엄마하고 말하면 벽보고 말하는 것 같아, 내 맘이야, 참견 하지마, 또 잔소리야,
무슨 말만 하면 화부터 내고 그래, 엄마하고 말하기 싫어! 이것이 아이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들 말을 인정하지 않고 들어주지 않고 내 말만 하니 커버린 아이들은 이렇게 반항하며 대들더군요.
이것이 내 스스로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것이 사랑인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사랑을 받고 보니 그것이 사랑이 아니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말 한마디 해주고 기다려줍니다.
또 자기가 한일에 자기가 한말에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이들 입장에선 엄마가 이해가 안 될 것 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해주던 엄마가 이젠 스스로 하라고 하니 짜증이 나고 힘이 들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금씩 변화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축복의 말을 해줍니다. 그러면서 관계가 조금씩 회복 되어가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물질의 변화입니다. 물질로 인한 어려움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었습니다.
내야 할 돈은 많은데 들어오는 돈은 턱도 없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아껴서 써보자고 줄이고 줄여서
써보았지만 만족은 없고 부족함은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머릿속은 계산으로 꽉 차있고 있지도 않은 돈에 계산은 벌써 끝이나 있었습니다.
오늘까지 얼마가 있어야 하는데........ 그 돈이면 세금을 얼마를 내고 무엇에 얼마를 쓰고 또 무엇에 무엇에......
그러나 내 현실의 내 주머니를 보면 한숨이 나오곤 했습니다.
날짜를 넘어선 세금 용지를 보면 마음은 답답합니다. 해결될 것 같지 않은 현실,
해결되고 나면 또다시 다가오는 문제들 속에서 가슴은 터져버릴 것 같았습니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머리는 계산으로 늘 아팠습니다. 반복되며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고부터는 물질의 자유함도 찾아왔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제거해 주셔서 계산하지 않게 되고 있는 것에 감사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돈에 대해 생각하고 계산하고 있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물질의 자유 함을 누리고 있는
나를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20년이 넘도록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늘 돈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나였는데 나도 모르게 돈의 자유 함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많이 갖는 것이 자유로움이 아닌 것을 알았고 마음의 평안함이 진정한 부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기도하려고 자전거를 타고 교회에 가는 길에 신호대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 날도 카드대금의 날짜는 지나고 있었습니다. 자유 함이 없을 때였으면 마음은 걱정으로 한 가득 안절부절
하고 있었을텐데 그 까짓 거 그래봐야 신용불량 밖에 더 되겠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너무 평안한 마음과 자유 함에 절로 감사하게 되고 지난날의 내 모습을 떠 올려 보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지금의 이 평안함과 자유로 인해 마음이 설레고 나의 이런 마음에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맑고 청아합니다. 싱그럽고 맑습니다.
하늘의 푸르름이 교회에 가는 내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내 능력으로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셨고 없어도 평안과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납니다.
물질은 내 남편의 생명입니다. 그 사람의 하루하루의 생명입니다. 그 사람의 생명을 주고 가지고 오는
돈을 어떻게 써야 잘 쓸 수 있을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써야겠다는 생각이듭니다.
생명을 주고 가져온 물질을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여 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내 자신의 변화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했지만
이제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몰랐지만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며
서로 사랑하며 진실함으로 축복하고 화목하게 사는 것이 성도의 본분임을 알았습니다.
삶에 꿈과 목적을 잃어버렸던 내게 가르치는 교사의 꿈과 목적이 생겼습니다.
막9:23=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 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고후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 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제 나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새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2년 8개월이 지난 지금도 그 사람들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교회와 가정이 따로 였던 것이 이제는 교회와 가정생활이 하나가 되어 가는 것을 체험 하면서
예수 믿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 것과 내 마음 속에서
나를 주관 하시고 나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은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나를 먼저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제 나는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성숙되어 가고 있으며 사랑의 깊이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축복하며 사는 것이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내 생명의 주인이 예수님이시고
나를 사랑하기에 독생자 예수를 아낌없이 주셨고 내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주신 예수님.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그분이 나의 주인이시기에 기쁨으로 사랑하며 살고 있으며
교인이 아닌 내 영혼과 삶을 책임지시는 예수를 믿는 성도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에 나의 죄를 용서하신 것처럼 나는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행복하고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또한 용서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고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내가 받은 하나님의 참사랑과 기쁨을 당신도 함께누려 보세요.
감동과 눈물이 희열과 감격이 넘칠 것입니다.
나에게 참사랑을 부어주신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가족상담실장 이미숙 이었습니다.